[쿠로아카] 그냥, 전해

HQ 2016. 8. 5. 16:24

아카른 전력 주제 : 상사병

 

 

1.


  "헤어져요."


  아카아시는 집을 나갔다. 쿠로오는 붙잡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갈라섰다.




2.

  


  헤어져요,라고 했지만, 쿠로오와 아카아시가 사귀고 있던 것은 아니다. 둘은 그저, ‘룸메이트’ 정도였다. 쿠로오가 먼저 대학에 진학 한 뒤,아카아시가 그와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에게 같이 사는게 어떻냐고 물어봤고,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되었다. 한집에 살면서 함께 장을 보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하고, 잠을 잤다. 쿠로오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 내렸다.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 사람은 쿠로오 뿐이었다. 


 


3. 



  쿠로오와 아카아시는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쿠로오가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는 새 그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아마, 보쿠토와 연락을 하면서 주워들었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한 뒤, 아카아시는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하려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아카아시는 보폭을 늘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쿠로오 씨. "

  "어어?"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는 듯, 쿠로오는 눈을 크게 뜨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금방 여유를 되찾아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아카아시. 여긴 어쩐 일이야? "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하려고요."

  "이 근처면, 설마 너도 T대?"

  "네."


 그에 쿠로오는 눈으로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이 살래?"


 


4.



  아카아시는 턱을 괴고 앉았다. 늦은 저녁이라 카페 안은 한적했다. 짐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챙겨 놓았었는데. 함께 산 칫솔하고, 컵, 그릇과 잠옷까지. 다투는 일도 없이 담담히 집을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한쪽에 두고 왔나보다. 아카아시는 휴대폰을 꺼내 메세지를 입력했다. 



  제 짐 좀 가져다 주실 수 있



 민폐인가, 싶어 메세지를 지우려는데, 버튼을 잘못 눌러 발송해버렸다. 잠시 기다려 봤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버튼을 다시 누르기 시작했다.


  짐은 버리셔도 되



 요, 라고 작성하려다 그만 뒀다. 여전히 답변이 없었다. 아카아시는 보낸 메세지 함에 들어가서 기록을 지웠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휴대폰 다시 집어서 무음 상태로 바꾸고 뒤집어 놓았다. 날이 새면, 방을 새로 구해야겠다. 학기 중간이라 대학 근처 방을 구하는데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웃돈을 얹어준다고 하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돈이 부족해서 쿠로오와 동거한 것이 아니었다. 짐을 가져와야 할까. 아니면 버려달라고 하고, 전부 새로 살까 고민이 됐다. 어차피 전공 책은 대부분 학교 사물함에 있으니 새로 사도 문제 될것은 없다. 머리가 아파져서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짚는데, 노란 동전같은 눈으로 저를 응시하던 쿠로오가 생각났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아카아시에게 , 쿠로오는 이유를 묻지 않았었다. 벨이 울렸다. 카운터에 가서 주문했던 커피를 받아왔다. 우유 거품이 잔뜩 올라간 카푸치노에 시나몬 파우더를 솔솔 뿌리자 독특한 향기가 올라왔다. 아카아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공상에 빠져들었다.




5.



   쿠로오는 혼자 누워있던 침대에서 눈을 떴다. 잠들었던가. 제대로 일어나서 , 샤워를 하고, 밥을 먹었다. 아카아시가 쿠로오의 집에 들어온 뒤로 식탁 위에는 항상 대화가 흘렀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수저를 들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았다. 아카아시가 집을 나간 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아니지, 아직 일주일밖에, 인가. 같이 살면서 쌓아왔던 일상은 안개처럼 흐려져 있었다. 문득 이전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가끔 생각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어, 그래도 참 다행이야.

  잘 지내고 있겠지.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을까. 늘 이성적이고 차분한 후배였으니 잘 지내고 있을 것 같다. 애초에 아카아시를 먼저 좋아한 쪽은 쿠로오였다. 방을 구하러 돌아다닌다는 말에 단번에 기회인가, 하고 생각했다. 같이 살래, 라고 제안한 뒤 아카아시의 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간신히, 승낙을 얻고 나서는 꿈에 그리던 달콤한 생활을 보내왔다. 그랬는데….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아카아시는 차에 무언가를 두고왔다면서, 차키를 집어 현관을 나섰다. 뭘 두고왔다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일은 아카아시가 나가고 난 뒤였다. 집 전화가 울렸다. 아카아시와 쿠로오 둘 다 집 전화보다는 휴대폰을 쓰는 세대라서, 따르릉 따르릉 울리는 소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쿠로오가 전화를 받자 아카아시군? 이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로오는 마른 침을 삼키고, 아카아시는 외출중인데, 누구십니까, 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장하여 물었다. 수화기 건너편의 여자는 아카아시와 같은 과 선배라고 했다. 그리고선, 정말, 어떻게 하려는 건지, 돌아오면 연락 좀 받으라고 전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공기가 부족해진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부담이 되고 있었던 건가. 쿠로오는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아카아시와 자신은 아직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만한 일은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아카아시를 놓아주려면 지금이 적기 아닐까.


  그만 생각하자. 쿠로오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식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거실 한쪽에 놓인 캐리어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6.



  그날 아카아시는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다시 차고에 다녀왔었다. 현관에 발을 들이자, 오렌지색 불이 들어왔다. 조명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새로 교체해야하나, 하고 불빛을 올려다보는데, 쿠로오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할말이 있어."

  "뭔데요?"

  "너, 슬슬 독립하는 것이 어때?"



   그에 아카아시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실로,쿠로오가 내뱉은 말은 그에게 수수께끼 같았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에게서 좋아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고, 자신도 쿠로오에게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다. 쿠로오는 보쿠토만큼 감정을 온 몸으로 들어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아카아시는 고등학교 때부터 쿠로오가 저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려 저를 쫓고 있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쿠로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아카아시가 대학에 입학하고 우연히 마주치자마자 동거를 권한 쿠로오였기에, 아카아시는 틀림없이 그가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은 서로를 사랑 하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쿠로오는 장난기 있는 선배의 얼굴도 아니고, 다정한 룸메이트의 얼굴도 아니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게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아카아시의 눈에 비친 쿠로오는 지독하게 낯선 얼굴이었다.


  "... 시간을 좀 주세요."



  그로부터 3일뒤, 아카아시는 집을 나갔다.




7.



  거실로 나온 커튼을 열었다. 봄 햇살이 거실을 밝게 비췄다. 그에 쿠로오는 몸이 개운하고 기분도 좋아진 것 같았다. TV를 켜고, 리모콘으로 별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는데, 흑백 영상이 나오는 채널이 있었다. 오래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었나 보다. 잠시, 채널 돌리는 것을 멈추고, 무슨 내용인지 보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노래를 듣고 있으니, 아카아시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슬슬 독립하는 것이 어때, 라는 쿠로오의 말에 아카아시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곧바른 눈동자로 쿠로오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쿠로오는 무언가 잘못한 기분이 들어, 무슨 말이든 덧붙이려했다. 그때, 아카아시는 시간을 좀 달라, 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볼만한 일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듯 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호흡도 거칠어진 것 같다. 결국 인상이 팍 구겨졌다. 듣기 싫은 소리가 계속 떠오르자 쿠로오는 리모콘을 들어올려, TV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8.



   아카아시는 새 집을 구하지 않았다.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인 숙박업소에 들어가서 몇 주 머물겠다고 하고, 가지고 있는 현금을 전부 줬다. 카드로 책을 적당히 몇 권 사고, 학교를 다니고, 하교 후엔 방에 앉아 책을 읽었다. 아카아시는 책상위에 놓여있던 홍차를 호로록 마시고, 공상에서 깨어났다. 1년간 떨어져서 전혀 연락을 하지 않던 때도 생생히 기억나던 쿠로오의 얼굴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우연히 마주친 뒤로 1년이나 같이 지내왔다. 길다면 긴 시간동안 겹겹이 쌓인 추억을 잊는데 또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얼마나 그리워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았다. 밤에 잠이 잘 안 오기는 했지만, 애초에 커피나 홍차를 달고 살아서 그런 것일 테다. 식욕이 좀 떨어진것도 같지만,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다. 본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사실, 괜찮지만은 않았다. 몇 번이고 찾아갈까 생각했다. 아무 연락도 않고 찾아가서, 짐을 가지러 왔다고 하면, 쿠로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져가, 라고 말할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상상속의 여유로운 쿠로오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아카아시는 핸드폰을 거칠게 집어들고 꾹꾹 버튼을 눌러 메세지를 보냈다. 


  짐을 두고 나왔는데 저녁에 가도 될까요?


기분과는 다르게  필요한 말만 정중하게 보냈다. 바로 답문이 왔다. 


  저녁에 일이 있어. 비밀번호 그대로니까 그냥 가져가. 


 쾅,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책상을 덮고 있던 유리에 금이 갔다. 아카아시는 책상위에 있던 책들을 떠밀듯이 한쪽에 치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9.



  쿠로오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아카아시는 벌써 다녀갔을까. 이전에, 쿠로오는 캐리어를 발견하고, 손쉽게 잠금장치를 풀고 열어봤다. 캐리어 안에는 아카아시의 칫솔과, 같이 산 컵과 그릇, 베게 커버, 옷 그리고 전공 서적 몇 권이 들어있었다. 차곡차곡 잘도 챙겨놨네, 라고 생각하면서 쿠로오는 짐을 하나하나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았다. 잠금장치가 풀려있는 캐리어를 보고, 지금 아카아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헤어지자고 했는데 끈질긴 사람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짐을 다시 싸고 있을지도. 쿠로오는 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10.



  짐을 꼼꼼히 챙기고, 풀려져 있던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일어서려는데,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왔네."

  "...네."


 예상했던대로 담담한 쿠로오의 목소리에, 아카아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으려했다. 그러나 아카아시는 매달리는 듯한 눈빛으로 쿠로오를 올려다보고 말았다. 잘 지내셨나요, 라고 한 마디를 건네려는데 벌써 가슴이 서걱거렸다.



11.


  쿠로오는 강아지처럼 슬픈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카아시를 보고, 손을 뻗어서 단번에 그를 일으켰다. 어깨를 확 잡아 끌고서는, 무방비한 아카아시의 두 볼을 단단히 붙잡고 입을 맞췄다. 아카아시를 붙잡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천천히 입을 떼고, 어깨에 팔을 둘러서 제 품으로 꼭 껴안았다. 아카아시의 눈동자에 투명한 물이 차올랐다. 달이 커지듯, 천천히 차올라 툭 터진다. 눈물이 흘러내린 것은 한 순간이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를 더욱 세게 끌어안고 한손으로는 붉어진 눈가를 닦아줬다. 일주일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는데,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 허사가 됐다. 이렇게 서로 아파할 바에는 그냥, 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미안해.”



 쿠로오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에 아카아시는 움칠, 몸을 떨고선 작게 대답했다.


  “저도 죄송해요….”

 

 그에, 쿠로오는 피식 웃었다. 

 

  “네가 뭐가 죄송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죄송해요.”


쿠로오는 이전에 TV에서 들었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



 아카아시와 쿠로오 둘 다, 서로에게 무언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서 헤어지기까지 했는데,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쿠로오는 노래 가사의 주인공처럼 헤어지고 난뒤 지난날을 그리워하기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제대로 전하는 편이 낫다.


“좋아해, 많이…, 알고 있지?”


나지막한 쿠로오의 목소리에, 붉어져 있던 아카아시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저도 좋아해요….”

 

 

 

 

 

 

 

 

 

 

 

 

 

 

 


 

 

후기 :

  1.상사병, 이렇게 쓰는거 맞는지....

  2. 쿠로오가 책에서 읽은것 같다고 떠올린 구절 출처는 진단메이커


  가끔 생각나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어, 그래도 참 다행이야.

  잘 지내고 있겠지, 잘 지내고 있을 거야.

  나 없이도.


언젠가 진단메이커에서 '당신의 커플링을 위한 문장?' 에 '쿠로아카'라고 쳐서 건진 문장입니다.


  

  3. 노래는 비틀즈의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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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프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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