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른 전력 주제 : '키스'

 

아카아시는 외동이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해외에서 근무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의 집은 조용한 날이 많다. 그렇다고 외로움 느끼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배구 연습이 있는 날이면 한 학년 위의 선배들과 늘 에너지 넘치는 보쿠토와 주말을 보내게 되지만, 아카아시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배구 연습이 없는 휴일엔 주로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모처럼의 휴일이니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려 하였는데, 마시고 싶은 차가 다 떨어지고 없었다. 누군가 여러 종류의 홍차로 가득 찬 그의 찬장을 보았다면 틴케이스도 많으니 아무거나 타 마시면 되지 않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감이지만, 그럴 수는 없지.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기분에 따라 마시고 싶은 차가 있는 것이고,지금 같이 구름 끼고 쌀쌀한  날씨에는 꼭 '그' 홍차가 필요했다.



/



"어라?"

"안녕하세요."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나가  단골 카페에서 홍차를 구입하고 나오는데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쿠로오 테츠로. 최근 아카아시는 장난기 많으면서도 자기 팀원들을 하나하나 진중하게 챙겨주는 저 타학교 주장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너, 이 근처에 살았었나? "

 "네."


그는 네코마 학생이니 분명 도쿄 내에 살지만, 둘은 학교를 가기 위한 지하철 방향도 다르고 기본적인 활동 범위가 다르다. 이렇게 마주치는 것은 그와 안면을 트고나서 분명 처음이었다. 쿠로오 선배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운동화를  좀 사러.”


아카아시의 얼굴에 의아함이 드러났는지 쿠로오가 대답했다.


“그걸 사러, 이 멀리까지요?”

“우리 동네에는 이 메이커가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지하철 두 정거장이면 그리 멀진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자주 다니지 않아서 그렇지, 먼 거리는 아니다. 그래도 그렇게 대답하니 할말이 없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보쿠토 선배가 없이 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기도 하고.

 

“켄마 씨는요?”


더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 전에 재빨리 떠오르는대로 질문했다. 그런데,


“켄마가 주말에, 뭐 할 것 같은데?”


 너무 식상한 질문이었나 보다.


 “ .... 알 것 같네요.”


 분명 침대에서 게임을 하고 있겠지. 타학교 학생이고, 별로 말을 해본적은 없지만 뭘 하고 있을지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른다.


 "그보다, 들고 있는 거, 커피?"


 아카아시가 또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이번엔 쿠로오 쪽이 질문을 했다. 그리고,


 “홍차인데요.”


 라고 답하니 쿠로오는 어쩐지 오묘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문제라도?"

   "...아니, 너답다 싶어서."

   "......?"


쿠로오 쪽에서는 보통 고등학생 남자, 그것도 운동하는 사람이 홍차를 즐긴다는데, 왜 이렇게 위화감이 안 느껴지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이런 말을 해봤자 아카아시는 취향일 뿐입니다, 라고 냉담하게 대답할 것이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날씨가 좀 쌀쌀하다고 생각했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거세져서 아카아시와 쿠로오는 급히 근처에 있던 가게의 차양 밑으로 들어갔다.


   “야단 났네요.”

   “우산 없어?”

    “없어요. 쿠로오 씨는요?”

    “있어, 아침 일기예보엔 소나기 온다고 해서.  그보다 넌 그런 거 잘 챙겨볼 것 같아선 의외        네.”

     “...아침엔 좀 약해서.”


아카아시는 저혈압이라서 평소 부활동의 아침 연습도 겨우겨우 맞춰가는 가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배구 연습 없는 황금 같은 주말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있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왠지 좋지 않은 면을 남에게,  그것도 신경 쓰고 있던 사람에게 들킨 기분이라 아카아시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둘이 쓰긴 좀 작을지도 모르지만, 들어와. 집, 근처면 바래다줄게”


다행이 쿠로오는 우산을 펴느라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재빨리 그의 옆에 섰다.



/



   “....너,집이 상당히 크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만."

 

둘이서 한 우산을 쓰고, 아카아시가 이끄는대로 조금 빨리 걸으니 꽤 크고 분위기있는 주택에 도착했다. 과연, 사립학교 학생. 집이 가까워서 그런지, 체격이 결코 작지 않은 남자 둘이 우산을 쓴 것 치곤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빗발이 더욱 거세져서 아카아시는 쿠로오를 혼자 돌려보내기엔 좀 찜찜해졌다.


 “차라도 한 잔 드실래요?”

  “하아?”

  “죄송하지만 다과는 별로 즐기지 않아서, 드릴게 없네요.”

  “아니, 차로도 황송합니다.”


  조금 뜬금없었나. 갑작스러운 초대에 쿠로오는 놀랍다는 듯은 감탄사를 내보냈고, 아카아시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다과까지 바라는 거냐는, 무뢰한을 본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에 쿠로오는 장난기 있게 대답하며, 선뜻  아카아시의 집 현관에 들어선다.


 “좋아하는 차 종류 있으세요?”


집에 들어서서 바로 부엌으로 들어간 아카아시가 물었다.

 

 뭐가 저리 급해, 차만 마시면 쫓겨나는 건가.


 “차 종류 잘 모르니까 아무거나 줘도 돼.”


 “그럼 오늘 사온 것 드릴테니, 여기 앉아계세요.”


아카아시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쿠로오에게 식탁 의자를 빼주었다.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빼준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의 뒷 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저 한 학년 아래의 타교 후배는 단정한 얼굴을 지니고, 보쿠토를 비롯한 후쿠로다니 배구 부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리고’ 있다. 처음에 쿠로오는 저 녀석, 뭐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를 관찰할 요량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는 상대팀의 세터로서가 아닌, 순전히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사람 자체에 흥미가 생겨서, 기회가 될 때마다 보쿠토와 함께 그를 놀려먹고 있다.  성가시다고, 선배에게 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도 연습이든 장난이든 결국 어울려주는 저 후배를, 쿠로오는 꽤나 좋아하고 있다. 뭐, 진짜 싫어하는 것 같았으면 애초에 장난을 치지도 않았겠지.  


아카아시는 봉투 속에서 검은색 틴케이스를 꺼내 들어 조리대에 올려놓았다. 그 후 찻주전자에 물을 받아다 가스렌지에 올리고, 찬장을 열어 찻 잔을 두 개 꺼내고, 티 스푼을 찾아 든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물에 찻잎을 망에 담아 띄우고 차가 우러나길 기다리는 듯 잠시 가만히 바라 본다. 그리고선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서더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렌지에 데워온 후 찻잔에 적당히 붓는다. 마지막으로 적당히 우러난 차를 쪼르르- 소리를 내며 찻잔에 붓는다.


 아니, 아까도 생각한 것이지만 남고생이 차를 즐기는게 저렇게 위화감이 없어도 되는거냐.


 차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차를 타주는 아카아시의 뒷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쿠로오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쿠로오는 멍하기 차를 타주는 아카아시의 잔상을 다시 그려보다, 안 드실 건가요? 하고 묻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컵을 들었다.  누가 내준 차인데, 당연히 마셔야지.

 

  아카아시가 내준 차는 특유의 풀잎 향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강한 훈연 향이 나서, 어쩐지 건강한 차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  맛은 가벼운 듯 한데, 훈연 향 덕분인지 바디감이 있어, 어딘가 남성적인 차였다. 쿠로오는 평소 차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취향에 딱 맞았다. 오늘 같이 쌀쌀한 날씨에, 확실히,


    "좋네."

    "다행이네요."


  솔직한 감상을 말하니 항상 담담하던 후배의 얼굴에 미소가 생긴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 그보다, 아카아시는 좀 더 가벼운 차를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이쪽이 취향?”

   “이쪽은 비오는 날 한정입니다. 확실히 좀더 가벼운 쪽이 취향인데...”

   “...그런데?”

    "....이 홍차,  왠지 쿠로오상 분위기를 닮아서….”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 변화를 계속 보고 싶어서 차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그에 평소와 조금 다른 후배는 저런 대답을 들려준다. 정말로, 차에 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었는데, 저렇게 말하니 왠지 궁금해진단 말이지. 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이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비오는 날에 저런 말 들으니 괜히 싱숭생숭 해지는데.


     “이 차, 이름이 뭔데?”

     “.....Prince of Wales요”


  조금 늦게 대답하는 후배의 뺨이 붉다. 

  

 뭐야, 그럼 네가 생각하는 나는 왕자님이라도 되는 건가.  쿠로오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확실이 저 후배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아카아시도  그와 같은 마음이라면, 손이 빠른 쿠로오는 별로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럼 사양 않고, 왕자님의 키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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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프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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