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아카] Flower boy

HQ 2016. 8. 6. 23:19
쿠로아카전력60분 : 꽃

 

 

 

*호텔 매니저 쿠로오 x 플로리스트 아카아시

*현실의 저는 꽃알못. 실제 저렇게 꽃꽂이해서 얼마나 관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가볍게 읽어주세요.






1.



 

  조용히 밀려와서 부서지는 작은 파도를 닮은 듯, 아래로 향할수록 엷은 하늘색으로 변하는 하얀 대리석 벽. 바깥 세상을 차단하면서도 빛을 흡수하여 호텔 안쪽으로 쏟아내는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곳곳에 비치된 다양한 표정을 지은 천사 조각상들까지. 화려한 내부의 분위기와는 달리 호텔 밖 건물 상단에는 HOTEL NEKO 라는 표기와 함께 심플한 검은색 고양이 로고가 박혀있다. 정말이지, 안팎으로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모든 요소를 감각적으로 배치해 놓은 곳이었다. 한번이라도 이곳에 눈길을 준 사람은 떠나지 못하는 완벽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던 쿠로오였다. 그런데,



“면접 보러 왔는데요.”




 화려한 조명 아래에 들어서서 교복이라는 수수하다면 수수한 옷차림으로 꽃다발을 들고 온 청년을 본 순간, 쿠로오는 난생 처음으로 ‘꽃’에 흠뻑 빠져들었다. 진짜, 예뻐.





2.




  난을 치던 선조와, 식물원에 들어가 꽃을 연구 고조부, 개인 온실을 만들 정도로 꽃을 사랑한 증조부, 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작은 꽃집까지. 가문의 흥망성쇠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카아시가(家)는 대대로 꽃을 다뤄왔다. 인적이 드문 꽃집에 손님이 찾아 올만큼 감성적인 시대는 아니었기에 HOTEL NEKO 런칭 행사를 위해 플로리스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본 아카아시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평소와는 다른 노선의 전철을 타고, 앉아있는데 차창밖에 줄줄이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들이 보인다. 대도시답게 건물마다 개성 있는 로고가 빌딩의 머리위에서 빛나고 있었고, 각 건물의 입구에는 세련된 조각상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노랗게 빛나는 눈을 지닌 검은 고양이가 저 높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답게 유려한 선과 무늬가 없는 무채색의 심플한 디자인, 그리고 눈에 들어온 조명은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돋보였다. 신비로운 분위기. 무심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부케의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교복을 입은 남고생이 저녁 무렵에 이런 꽃다발을 들고 돌아다니, 고백이라도 할 건가, 라고 생각하는 듯 호기심이 어린 시선이 따라왔다. 차라리 직접 물어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텐데, 모두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아, 빨리 좀 도착했으면.




3.



  “면접,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만.”



  ‘꽃’에 정신이 팔려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는 쿠로오는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그래, 이리로.”



 쿠로오가 손짓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아카아시는 들고 온 꽃다발을 내밀었다. 훅 올라오는 꽃향기에 쿠로오는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 했다.



  “이거, 나 주려고?”

  “샘플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무덤덤한 목소리에 쿠로오는 내가 그런 말을 공고에 썼었던가, 하고 생각하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캔디같이 알록달록한 엶은 파스텔 장미꽃들이 안개꽃과 함께 엷은 연두색 한지에 둘러싸여있었고, 매끄러운 질감의 연하늘색 리본이 그 위를 다시 한 번 흘러가듯 둘러져 있었다. 꽃을 받아들인 쿠로오는 괜히 낯부끄러워 지는듯 했다. 아니, 남고생이 이런 꽃다발을 들고 오면서 아무런 위화감도 들지 않았던건가.




  쿠로오의 안내에 따라 호텔 내부에 있는 어느 방 안으로 들어선 아카아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밖에서 보면 스위트 룸이었는데 들어설 때부터 풀향기가 난다 했더니, 개인 화원을 통째로 옮겨온 듯 온갖 종류의 꽃과 식물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꽃을 다루는 아카아시가(家) 사람으로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만한 방이었지만, 아카아시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때, 쿠로오가 어디선가 의자 두 개를 찾아와서는 앉으라는 듯, 한 쪽을 툭툭 두드렸다. 아카아시가 의자에 앉고, 방안을 다시 둘러보자 쿠로오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면접이라기 보단 담소를 나누듯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고등학생이야?"

  "그런데요. 문제있나요?"

  "아니, 노동법에 위반되는 나이는 아니니 상관없어. 그보다, 들고 온 부케도 꽤 괜찮지만, 그래도 면접이니까 꽃 디자인 해볼래?"

  "테마가 있습니까?"

  "이름이...?"

  "아카아시 케이지 입니다."

  "그럼, 오늘 아카아시군이 보고 느낀 이 호텔 분위기를 표현하는걸로."

  "여기서... 말입니까?"

  "아, 필요한 도구 있으면 말해. 갖다 줄게."



  쿠로오는 뭐든 가져다주겠다는 듯 자신 만만한 표정이었지만 아카아시는 그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꽃들을 이렇게 난장판으로 늘어놨는데, 플라워 전문 도구가 있을리가.



  "....가위랑 칵테일 잔 몇 개만 갖다 주세요."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는 의아한 듯 다시 되물었다.



  "칵테일 잔?"



  난데없이 칵테일 잔을 준비해 달라는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에 아카아시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방안의 꽃들에게 시선을 주면서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꽃이라고 꼭 부케를 만들거나 화병에 꽂아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쿠로오는 방 안 현관 쪽에 있는 룸서비스용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안내 데스크의 호텔 직원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는 소리가 넘어왔고,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부탁한 것을 가져다 달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고, 쿠로오가 문을 열어주자 직원 서너명이 칵테일 잔 몇 개와 색색의 리본, 꽃가위와 화병 몇 개를 방안에 들여놨다. 아카아시는 직원들이 가져온 유리 글라스를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이내 마음에 든 것을 찾았는지, 잔을 내려놓고 꽃 몇 송이와 안개꽃, 꽃가위, 그리고 색색의 리본을 들고 주방 조리대 앞에 섰다. 분명 요리를 하기 위한 공간이었는데, 구비되어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검정색 앞치마까지 두르는 아카아시의 모습은 본인이 평소에 사용하던 작업대 앞에 선 마냥 자연스러웠다. 얇고 긴 손가락이 꽃을 들고 줄기를 정리하고, 꽃잎을 몇 개 따내는 모습은 면접을 보러왔다는 사실은 잊은 듯 평화로워 보였다. 쿠로오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듯 평화로운 아카이시의 표정을 보고 괜히 초조한 기분이 들어 발걸음을 옮겨 아카아시의 곁에 다가섰다.



"도와줄까?"

"면접 아니었나요."



  세상 혼자 사는 듯 여유로워 보이더니, 면접 보는 중인 것을 자각하고 있기는 한가 보다. 어찌됐건 꽃에만 시선을 주던 아카아시가 고개를 들어 올려 저를 바라보자 쿠로오는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벌써 결정 난 것 같으니까."


 

  아카아시는 말없이 꽃 몇단과 꽃가위를 들어 쿠로오에게 건냈다.



4.

 

 "줄기는 사선으로 잘라주세요."

 "잎사귀는 몇 장 남겨두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손이 꼼꼼한 편인 쿠로오는 조용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카아시의 지시에 따라 초보자치곤 솜씨 좋게 꽃을 정리해서 아카아시에게 내밀었다. 그에, 아카아시는 꽃을 받아서 마무리 커팅을 한 뒤, 조심스럽게 유리잔에 꽂았다. 입구가 넓고 아래로 향할수록 좁아지는 긴 칵테일 잔에 비스듬히 담긴 보라색 붓꽃은 우아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과연 플로리스트.



"꽃은 예쁜데, 우리 호텔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건데?"

"꽃말이요. 신비로운 사람, 행운, 기쁜 소식이에요."




  이곳 분위기랑 어울리지 않습니까? 라는 말소리가 들렸지만 쿠로오는 대답 해 줄 수 없었다. 잎사귀 같은 청록색 눈동자와 반듯한 콧대, 그리고 색이 엷은 살구색 입술.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들고 왔던 부케의 파스텔 장미 한 송이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다. 아니, 생화의 싱그러움보다는 색이 바랜, 하얀색 솜뭉치와 안개꽃으로 채워진 플라워 박스에 담아놓은 드라이 플라워 같이, 성숙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나는 '꽃'이었다.



"......아카아시 군, 우리 호텔에서 평생 일할래?"



탄식하듯이 말을 건내는 쿠로오에게 아카아시는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당 많이 주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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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프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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